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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룬 판 프린스테러르 
(Groen Van Prinsterer)

카이퍼의 정신적 스승 
신칼뱅주의 사상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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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바빙크
(Jan Bavinck)

헤르만 바빙크의 부친
구칼뱅주의와 신칼뱅주의 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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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

신칼뱅주의 운동의 선구자
자유대학교와 반혁명당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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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

신칼뱅주의 사상을 확장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신학자
사상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로 대표되는 신칼뱅주의 전통을 깊이 탐구합니다.
문화

하나님의 주권이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친다는 영역 주권 원리를 연구합니다.
교육

신칼뱅주의 세계관을 한국 교회에 전수하고 형성하는 교육을 실천합니다.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 강독회
하나님의 큰 일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 강독회에서는 바빙크의 신앙 교육을 중심으로 기독교적 신앙의 가르침을 다룹니다. 이 책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신앙 고백을 바탕으로 일반 성도들을 위한 교육을 목표로 합니다. 바빙크는 인간의 궁극적 선이 하나님임을 강조하며, 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의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일반 계시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특별 계시는 참된 구원과 화해를 제시합니다. 이 강독회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과 교육적 접근을 탐구하는 중요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신칼뱅주의자 팀 켈러 세미나 01
신칼뱅주의자 팀 켈러 세미나 02
신칼뱅주의자 팀 켈러 세미나 03
게시판
세-마리-작은-여우:-지성주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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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의사이자 약제사 개요 앞서 지성주의가 강단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보여 주었다면, 3장은 그 설교가 회중을 어떻게 빚어 가는지, 그리고 그 병을 어떻게 고칠 것인지를 다룹니다. 카이퍼는 시선을 강단에서 회중석으로 돌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설교가 이루어지는 방식대로 회중의 모습이 빚어진다. 지성주의는 설교에만 머무는 병이 아니라 교회 전체로 번지는 병이라는 것입니다.  첫머리에서 카이퍼는 뜻밖에도 지성주의의 좋은 열매를 길게 열거합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자라고, 교리문답이 다시 존중받고, 성경 전체를 알게 됩니다. 그러고는 이성의 수고를 소홀히 하는 교회는 반드시 이단의 먹이가 된다고 쐐기를 박습니다. 그러나 이성이 마음과 행위에서 떨어져 홀로 남으면, 그 좋은 열매는 세대를 거치며 썩어 갑니다. 알아듣는 소수만 교회의 핵심이 되고, 지식이 회심의 시금석이 되며, 두 번째 세대에서는 경건이 빠져나가고, 마침내 회중은 메마른 형식을 질타하는 자유주의 설교자를 환영하며 따라갑니다. 이 대목에서 카이퍼는 오해를 막기 위해 길게 방어선을 칩니다. 자신은 체험을 말씀 위에 두자는 것이 아니며, 말씀 사역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이어야 하고, 설교자는 자기 체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이 장의 핵심 비유가 나옵니다. 성경은 모든 영혼의 병을 고칠 약이 갖추어진 약국이고, 좋은 설교자는 그 약국에 밝은 약사인 동시에 환자의 병을 살펴 처방하는 의사여야 합니다. 지성주의는 설교자를 약 목록만 낭독하는 약사로 축소해 버립니다. 카이퍼는 반대편에도 똑같이 경고합니다. 따뜻함을 위해 고백의 명료함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1부 전체를 뒤집는 한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세-마리-작은-여우:-지성주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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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강단의 공증인 개요 이제 지성주의가 어디서 자라고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다룹니다. 먼저 카이퍼는 세 가지 물음을 던집니다. 남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개인의 기질에 따라 지성주의의 위험이 다른가? 그의 대답은 모두 “그렇다”입니다. 그런데 이 세 물음이 겨냥하는 과녁은 하나입니다. 교회와 사회에서 흐름을 정하는 사람들, 곧 말하고 쓰고 가르치는 지도층이 왜 하필 이성 쪽으로 기울기 쉬운가 하는 것입니다. 남녀 논의는 1900년 무렵의 시대적 전제 위에 서 있어 오늘의 독자에게 낯설게 읽히지만, 카이퍼의 실제 논지는 그 끝에 있습니다. 해결책은 여성적인 것을 섞어 넣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는 머리가 아니라 그 아래 마음이 이어지고 삶으로 걸어가는 다리가 붙은 머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이퍼는 여기서 책 전체의 해석 지침을 직접 밝힙니다. 자신의 항의는 세 가지 치우침 모두를 똑같이 향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카이퍼는 뜻밖의 증인을 불러옵니다. 신앙적으로는 자기 진영과 멀리 떨어진 젊은 문인들입니다. 그들은 입술에서만 나오고 마음을 거친 적 없는 낡은 시의 언어에 반기를 들었고, 독자들은 그들에게 몰렸습니다. 카이퍼는 그들의 비판이 옳았다고 인정하고, 우리 강단이 앓는 병이 바로 그 병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선을 긋습니다. 문제는 체험적 설교냐 객관적 설교냐가 아니라, 설교 뒤에 영적 실재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이 장의 중심 이미지는 공증인입니다. 공증인은 남의 재산을 더없이 정확하게 기록하지만 그 재산은 그의 것이 아니고, 그에게 아무 기억도 얽혀 있지 않습니다. 앞에서 서류만 다루던 사무실 책임자가 이제 강단에 선 모습입니다.
세-마리-작은-여우:-지성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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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머리와 마음과 손 개요 『세 마리 작은 여우』가 겨냥하는 것은 교리의 오류가 아닙니다. 카이퍼가 문제 삼는 것은 신앙의 내용이 아니라 신앙의 균형입니다. 포도원을 허무는 것이 멧돼지가 아니라 작은 여우이듯, 교회를 안에서부터 갉아먹는 것은 이단이 아니라 한쪽으로 기운 경건이라는 것이 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이 장에서 카이퍼는 책 전체를 읽어 낼 진단의 도구를 먼저 건네줍니다. 머리와 마음과 손이라는 세 겹의 작용입니다. 머리는 진리를 생각하고, 마음은 하나님을 느끼며, 손은 섬기고 일합니다. 이 셋이 함께 움직일 때 신앙은 건강하고, 하나가 나머지 둘에서 떨어져 홀로 앞서 나갈 때 병이 듭니다. 카이퍼가 강조하는 것은 열심이 지나쳐서가 아니라 서로 떨어져서 병이 된다는 점입니다. 세 가지 치우침 가운데 카이퍼는 지성주의를 먼저 다룹니다. 개혁파 교회는 모든 신자가 진리를 스스로 알기를 요구하는 교회이기에, 바로 그 강점 때문에 머리가 홀로 앞서 나갈 위험에 가장 먼저 노출됩니다. 그런데 카이퍼는 지성주의자를 물리치라고 하지 않고 얻으라고 합니다. 그가 지키려는 신앙고백의 가치를 먼저 인정해야 그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의 후반부는 창고 비유입니다. 개념과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은 배에 실린 화물을 적어 둔 선적 서류와 같습니다. 서류는 없어서는 안 되지만 서류가 곧 화물은 아닙니다. 평상시에는 서류만으로도 일이 굴러가지만, 위기가 닥치면 창고에 실제로 무엇이 쌓여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이 장이 남기는 물음은 결국 하나입니다. 나는 믿음에 관한 서류를 갖고 있는가, 아니면 믿음 자체를 갖고 있는가. 요점 개혁파 교회 생활이 빠지기 쉬운 죄가 있다. 지성주의다. 지성적 접근이 모든 것
찰스-하지의-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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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서론 제1장 방법론에 관하여 §1. 학문으로서의 신학 §2. 신학의 방법 §3. 사변적 방법 §4. 신비적 방법 §5. 귀납적 방법 신학자는 자연과학자와 동일한 규칙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6. 성경은 신학의 모든 사실을 담고 있다 제2장 신학  §1. 신학의 본질 신학의 정의들 자연신학 §2. 자연의 사실들이 하나님을 계시한다 자연신학에 대한 성경적 논증 §3. 자연신학의 불충분성 §4. 기독교 신학 신론, 인간론,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 제3장 합리주의  §1. 이 용어의 의미와 용례 §2. 이신론적 합리주의 §3. 합리주의의 두 번째 형태 — 그 본질, 반박, 역사 §4. 독단주의(Dogmatism) §5. 종교 문제에서 이성의 고유한 역할 계시를 수용하기 위해 이성이 필요하다 —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의 차이 — 이성은 계시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한다 — 불가능한 것은 믿을 수 없다 — 이성은 계시의 증거들을 판단해야 한다 §6. 철학과 계시의 관계 §7. 신앙 문제에서 감각의 역할 제4장 신비주의  §1. 이 용어의 의미 철학적 용례 교회사에 나타난 신비주의 §2. 초대교회의 신비주의 몬타누스주의 — 이른바 디오니시우스 — 신플라톤주의 §3. 중세의 신비주의 그 시대의 일반적 특징 — 중세 신학자들의 여러 부류 — 신비주의의 범신론적 경향 — 복음주의적 신비주의자들 §4. 종교개혁기와 그 이후의 신비주의 종교개혁이 대중의 정신에 미친 영향 — 종교개혁자들 가운데 있던 신비주의자들 — 슈벵크펠트 §5. 정적주의 일반적 성격 — 운동의 지도자들 — 기용 부인, 페늘롱 대주교 §6. 퀘이커 또는 친우회 기원과 초기 역사 — 그들의 교리 — 정통파 친우회의 교리 — 이단적 친우회 — 바클
바빙크-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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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에는 지금도 헤르만 바빙크의 이름을 딴 초등교육기관이 존재한다. 힐베르숨 바빙크 스쿨, 도르트레흐트 바빙크 스쿨, 하를렘 바빙크 스쿨 등 모두가 우리가 아는 그 바빙크를 기리며 헌정한 학교 이름이다.  어쩌다 보니 바빙크 스터디 모임을 '바빙크 스쿨'로 정하게 됐다. 여력만 된다면 이후 '카이퍼 스쿨', '스킬더 스쿨', '팀 켈러 변증 스쿨' 등 교회를 위한 신학에 힘쓰고 싶다.  감사하게도 이번 가을에는 기독교 윤리학의 프론티어 이춘성 박사님께서 에서 십계명을 가르쳐주신다. 바빙크의 윤리학에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들이 여럿 소환되는데, 여기서 17~18세기의 황금률과 십계명의 하모니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번 9월부터 총신대학원에 임용되어 가르치게 되실  김인배 박사님께서 두 번의 특강을 인도해 주신다. 박사님은 헤르만 바빙크와 벤자민 워필드 연구로 칼빈에서 학위를 받으셨다. 흥미로운 것은 작년 강영안 교수님을 뵈었을 때 두 거장의 변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바로 그 이야기가 김 박사님의 학위논문 주제였다. 에서는 기독론의 은혜언약부터 시작하여 구원의 서정을 다룬다. 이 부분은 바빙크의 텍스트 중 가장 은혜스럽고 확실한 내용이다. 보다 학술적인 방향을 위해서 최근 영역된 바빙크의 자유대학교 부임 직후의 강의인 와 브루스 파스의 을 살필 것이다
세-마리-작은-여우---아브라함-카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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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 작은 여우』는 어떤 책인가? ​ 1901년 6월 27일, 아브라함 카이퍼는 이 책의 서문에 날짜를 적어 넣었습니다. 같은 날 네덜란드에서는 총선의 마지막 투표가 치러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한 선거구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두 후보를 놓고 다시 투표했는데, 6월 27일이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결과는 카이퍼 진영의 승리였고, 두 달 뒤 그는 총리가 됩니다. 카이퍼 전기 작가 제임스 브랫은 이 정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카이퍼는 선거에서 이긴 바로 그날 출판사에 『세 마리 작은 여우』 원고를 보냈다고 말입니다. 기억해 둘 만한 대목입니다. 공적 권력의 정점으로 올라가던 사람이 같은 손으로 부친 원고가, 정작 교회의 내면을 향한 경고문이었기 때문입니다. ​ 이 책은 처음부터 책으로 기획된 것이 아닙니다. 1900년 한 해 동안 카이퍼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주간지 『드 헤라우트』에 세 차례에 걸쳐 연재한 글입니다. 3월 11일자에서 시작해 12월 23일자까지, 꼬박 한 해가 걸렸습니다. 카이퍼의 많은 책이 그러하듯 이 책도 신문 지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을 단행본으로 묶자고 제안한 사람은 헤르만 바빙크 였습니다. 그는 글이 탁월하다는 이유로 출판업자 J. H. 콕에게, 카이퍼의 허락을 받아 책으로 내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이 작은 책은 카이퍼가 깜펀의 콕 출판사에서 펴낸 첫 책이 되었고, 이후 오랜 협력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1901년 7월에 나온 초판은 158쪽, 초쇄 2천 부였습니다. 두툼한 벽돌 책이 아니라 손에 쥐고 다닐 만한 소책자였다는 사실은 이 책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카이퍼는 여기서 학자들과 논쟁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의 평범
신칼뱅주의자-팀-켈러-컨퍼런스-강의-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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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위에-선-현대적-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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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켈러의 신칼뱅주의 2017년 4월, 프린스턴 신학교의 카이퍼 공공신학 센터는 팀 켈러를 ‘카이퍼 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런데 팀 켈러가 속한 미국장로교회(PCA)의 신학적 입장을 둘러싼 프린스턴 공동체의 반발로 수상은 결국 취소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어떠한 쓴소리나 자기 방어도 없이, 레슬리 뉴비긴에 대한 준비된 강연을 그대로 진행했다. ​ 그 강연은 카이퍼 상 역사 이래 가장 많은 청중이 모인 자리였고, 팀 켈러는 자신의 지지자와 비판자 모두와 대화를 나누며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만난 뒤에야 자리를 떴다. 이 장면은 단지 안타까우면서도 감동적인 일화에 그치는 것일까? 사실 성과 젠더에 관한 전통적 견해를 굳건히 견지하면서도 그 자리에 선 모든 이에게 귀를 기울인 태도는, 팀 켈러의 사역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압축해서 보여 준다. 바로 ‘정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이라는 원리다. ​ 이 표현은 본래 코리 브록이 헤르만 바빙크 연구에서 추출한 어구인데, 켈러는 이것을 신칼뱅주의가 자신에게 가르쳐 준 첫 번째 원리로 차용했다. “세상은 우리가 피해야 할 곳이 아니다. 전통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 교리에 굳게 서 있으면서도, 우리는 현대 세계의 모든 영역에서 그 세계와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1] 이것은 팀 켈러의 목회 사역을 형성한 핵심 축이었다. 그렇다면 이 원리는 목회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했는가? ​ 팀 켈러는 이 두 축을 잇는 작업을 ‘신학적 비전’이라 불렀다. 신학적 비전은 교리적 기초에서 자라나지만, 동시에 문화에 대한 이해를 품고 있다. 그래서 사역의 결정과 선택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복음을 충실하게 재진술한 것으로서, 삶과 사역과 선교가